[디지털아트] ① 백남준이 연 시대, VR·NFT로 확장…"진화는 계속"
코딩 작품 감상하고 가상현실 체험…소유권 대신 전시권도 판매

문체부·예술경영지원센터 '시그널 온 세일'…삼청동 7개 화랑서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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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네온 TV' 연작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2일 아트링크갤러리에 전시 중인 백남준의 '네온 TV' 연작의 모습. 2025.11.14. laecorp@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디지털 아트의 시작은 백남준이에요. 그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전원만 연결하면 시공간을 넘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디지털 아트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예견했어요."

백남준(1932∼2006)은 1970년대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을 선보이며 물질로 구현되는 예술품을 비물질의 영상으로 표현했다.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인 이경은 아트링크갤러리 대표는 지난 12일 전시장에서 백남준을 '디지털 아트의 시조'라고 강조했다.

백남준이 상상한 디지털 아트 시대는 오늘날 화면을 넘어 컴퓨터 코드, 디지털 파일, 대체불가토큰(NFT), 가상현실(VR) 등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고 있다.

지금의 디지털 아트가 어떻게 제작되고 유통, 판매, 소장되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디지털 미술시장 기반 조성과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한 '시그널 온 세일'(Signal on Sale)의 '디지털 아트 쇼케이스'다.

오는 16일까지 아트링크갤러리, 갤러리조선, 국제갤러리, 백아트,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피비갤러리, 학고재 등 서울 삼청동 일대 화랑 7곳에서 디지털 아트를 직접 관람·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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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정 작 '옥춘당: 로테이셔널 어큐뮬레이션즈'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트링크갤러리에서는 백남준의 '네온 TV' 연작과 서효정 삼성디자인교육원(SADI) 교수의 애니메이션 영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백남준은 이 작품에서 텔레비전 안에 소니의 휴대용 텔레비전 워치맨을 넣었다. 미리 제작한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의 기존 작품과 달리 워치맨이 안테나로 공중에 부유하는 전파 신호를 받아 화면을 빛과 선, 점, 잡음으로 채우도록 했다. 무작위로 끊임없이 생성되는 작품을 구현한 것이다.

백남준이 전파 신호를 이용했다면 서효정은 컴퓨터 언어 코드로 작품을 구현했다.

서효정의 '옥춘당: 로테이셔널 어큐뮬레이션즈'(Okchundang: Rotational Accumulations)는 알록달록한 전통 과자 '옥춘당'에서 착안해 노드 박스라는 비주얼 코딩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졌다. 옥춘당처럼 생긴 알록달록한 원형 구조가 컴퓨터 코드에 따라 랜덤하게 회전하며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소유를 전제로 하는 판매 대신 전시 권한 라이선스를 사는 방식으로 유통된다. 작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작품 영상이 올라와 있어 누구나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서효정 작가는 "작품을 구매하는 개념이 나 혼자 보겠다는 의도보다는 내가 이 물건을 샀다는 영향력을 보여주려는 행위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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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순 작가 엄정순 작가가 12일 학고재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격동 학고재에서는 엄정순 작가의 코끼리를 만날 수 있다.

작가는 3D 공간 촬영 기술인 '메타포트'(Matterport)를 이용해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를 입체적으로 기록했다.

전시장에서는 총 3개 영상을 3개의 프로젝터로 각각 다른 평면에 동시에 투사한다. 이 중 2개 영상은 검은 천에 투사해 영상이 흔들리도록 하고, 천 뒤로 빛이 통과하도록 해 관람객이 지나가며 빛을 체험할 수 있다.

엄정순 작가는 이 작품에서 코끼리의 주름에 주목했다며 "주름은 피부가 접혀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SDCR(스탠더드 디지털 캔버스 라이츠)이라는 블록체인 기술 플랫폼을 통해 소유권과 전시권 등을 관리한다. 작품을 소장하면 영상 파일이 담긴 암호화된 저장장치, 작품 보증서가 담긴 NFT, SDCR 기술지원 플랫폼 등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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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두 작 '피치 못할 블루스 - 콘트라베이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격동 국제갤러리와 삼청동 피비갤러리에서는 각각 블루스와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는 디지털 아트를 선보인다.

국제갤러리에 설치된 정연두의 '피치 못할 블루스' 연작은 실제 사람 크기의 스크린에서 콘트라베이스, 보컬, 색소폰, 오르간, 드럼을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이 상영된다.

작가는 서울과 미국 워싱턴 등 각기 다른 곳에 있는 연주자들에게 67 bpm(분당 박자수)의 속도와 간단한 코드만을 주고 자유롭게 해석해 연주하도록 한 뒤 모아, 마치 협연하듯 연출했다.

여기에 악기마다 '발효' 테마에 맞는 작품을 연동했다. 드럼 박자에 맞춰 막걸리 기포가 터지는 영상이 나오고,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항아리에서 만화경 효과를 이용해 빛을 뿜어내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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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데이즈 작 '플레이스 콜드 유'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신준식과 김인현으로 구성된 융합 예술 그룹 퓨처데이즈는 무대와 배우 중심의 정통 오페라가 아닌, 관람객이 가상의 무대로 들어가는 몰입형 작품을 만들었다.

관람객은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의 VR기기 메타퀘스트를 착용하고 3D 디지털 공간에서 인공지능(AI) 보컬이 부르는 오페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 작품이 내장된 메타퀘스트를 구입하면 어디에서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디지털 아트는 새로운 영역이고 시도하는 작가도 많지만, 소장이나 전시 측면에서 수집가들이 접근하기에는 장벽이 있다. 그렇다 보니 갤러리들도 선뜻 손을 내밀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기술의 진화로 거래 방법이나 소장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어 갈수록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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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관람객들이 12일 피비갤러리에서 VR 기기를 착용하고 퓨처데이즈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예술경영지원센터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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