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아트] ② 기념품 사듯 가볍게 구매…"2년 A/S도 해드려요"
2만원 NFT 작품부터 자연의 소리 오디오까지…직접 체험하고 소장

전시장 떠나서도 즐기는 예술…일상에 다가온 디지털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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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하이즈너 작품 구매하는 관람객 12일 갤러리 조선에서 한 관람객이 케빈 하이즈너의 작품 '헤드 인 더 클라우즈 유레카 거미즈 NFT'를 구매한 뒤 개봉해 살펴보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지난 8월 퍼포먼스(행위 예술)로 유명한 1세대 개념미술가 성능경의 개인전 '쌩∼획!'이 열렸다. 전시장에서 작가는 권력자들을 꾸짖겠다며 싸리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휘둘렀고, '쌩∼획!' 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작가는 한번 펼쳐지고 사라지는 퍼포먼스를 '사운드 싸리'라는 무형의 디지털 아트로 담아냈다. 이 작품은 싸리나무로 만든 회초리와 작가가 회초리를 휘둘러 만들어 낸 소리를 담은 음원 파일, 소리를 재생하는 스피커로 구성됐다. 마치 가전제품 매장에서 살 수 있는 오디오 같은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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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나무 회초리 휘두르는 성능경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개념미술가 성능경이 지난 8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서 열린 개인전 '쌩~ 휙!' 기자간담회에서 싸리나무 회초리를 휘두르고 있다. 2025.11.13. laecorp@yna.co.kr

성능경의 작품을 비롯해 다양한 디지털 아트를 직접 감상·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는 대규모 행사가 서울 삼청동 일대에서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개최한 '시그널 온 세일'(Signal on Sale)의 '디지털 아트 쇼케이스'로 아트링크갤러리, 갤러리조선, 국제갤러리, 백아트,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피비갤러리, 학고재 등 7곳에서 16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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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세인 박의 '아마추어 반달러를 위한 키트'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판매 주인 작가 인세인 박의 작품 '아마추어 반달러를 위한 키트'. 2025.11.13. laecorp@yna.co.kr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인세인 박의 개인전 '아방가르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미술관 훼손을 주제로 한 '반달리즘'(vandalism·문화재나 예술품, 공공시설 등을 고의로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을 디지털 영상 등으로 풀어낸 전시다.

작가는 '갤러리즈'(Galleries)라는 글자 내부에 성냥을 가득 채운 뒤 공터에서 비닐봉지로 만든 가면을 쓰고 글자를 태우는 퍼포먼스를 한다. '갤러리즈' 철자 중 '거짓말'을 뜻하는 'LIES' 글자에 먼저 불을 붙여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암시한다.

이 모습은 작가가 기록을 위해 촬영한 영상, 방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제삼자가 찍은 영상,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TV(CCTV)에 담긴 영상 등 세 가지 시점으로 담겼다.

작가는 CCTV 영상 파일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 메모리, 낙서를 위한 스프레이 페인트, 비닐봉지 가면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반달러를 위한 키트'를 제작하고, 여기에 작품 보증서와 사용 매뉴얼을 더해 100개 한정판으로 선보였다. 소장을 원하는 사람은 22만원을 내고 이 키트를 살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한 관람객은 "관람객이 키트를 사서 그 안에 있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전시장 안에 있는 자기 작품을 훼손하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인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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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하이즈너 작품 구매하는 관람객들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2일 갤러리 조선에서 한 관람객이 케빈 하이즈너의 작품 '헤드 인 더 클라우즈 유레카 거미즈 NFT'를 사기 위해 작품이 들어있는 상자에 손을 넣고 있다. 2025.11.14. laecorp@yna.co.kr

서울 소격동 갤러리 조선에서는 2만원에 살 수 있는 디지털 아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국 시카고와 뉴욕에 기반을 둔 작가 케빈 하이즈너의 '헤드 인 더 클라우즈 유레카 거미즈 NFT'는 총 100개 한정판으로, 1개당 2만원이다. 구매자는 상자 안에서 작품을 뽑듯 골라 산다.

일반적인 작품은 구매 당시 원형을 유지하지만 이 작품은 산 뒤 바로 뜯어봐야 한다. 비닐 포장 안에는 홀로그램 카드와 식용 젤리, QR코드가 들어 있다.

작품 안의 젤리는 먹을 수 있으며, QR코드를 통해 접속하면 약 5초 길이의 구름 모양 형상이 떠 있는 영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작품을 보유했다는 증거인 대체불가토큰(NFT)도 얻을 수 있다.

100개 한정판이어서 작품마다 개별 번호가 있고, 특정 번호의 상품을 뽑으면 작가의 드로잉 작품 등 선물도 받을 수 있다.

작가는 예술을 단순히 소유의 영역을 넘어 소비의 영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이런 방식의 작품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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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작 '바람에 흐르는 음악 I'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 화동 백아트에서는 전자제품을 연상시키는 디지털 아트를 선보였다. 성능경의 '사운드 싸리'를 포함해 김준, 추미림 등의 작품이 출품됐다.

자연의 소리를 채집해 작품으로 만드는 김준의 '바람에 흐르는 음악 I'은 강원도에서 채집한 자연의 소리를 들려준다. 가로로 긴 목재 구조물에 두 개의 스피커가 달려 있고, 음원이 담긴 MP3 플레이어와 앰프, 배터리 등으로 구성됐다.

두 스피커에서는 각각 서로 다른 자연의 소리가 나온다. 목재 구조물은 회전하게 돼 있어 손으로 돌리면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방향과 울림이 달라진다.

작품을 구매하면 작품 보증서와 사용 매뉴얼이 함께 제공된다. 마치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전용 오디오 플레이어를 사는 것 같다.

추미림의 '빛'은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본 도시의 모습을 픽셀로 재현한 작품이다. 도로 위 자동차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빌딩들은 저마다 빛을 낸다. 이 작품은 영상 파일이 담긴 USB와 이를 재생할 TV 모니터로 구성됐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디지털 영상의 최소 단위인 픽셀로 이뤄진 세상을 표현한 작품"이라며 "고장이 날 수도 있으니 2년 정도는 직접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줄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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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림 작가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추미림 작가가 12일 백아트에 전시된 자기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5.11.14. laecorp@yna.co.kr

아내와 함께 이번 전시 투어를 한 회사원 조영준(36) 씨는 "그림은 몇 점 구입해 봤지만, 디지털 예술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라며 "전시를 보면서 친숙해져 기회가 되면 작품 구입도 시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예술경영지원센터 공동기획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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