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금 공탁 불수리 처분은 부당"
"많은 나라서 3자 변제 광범위 인정…채권자와 채무자 사이 변제 제한 합의 없어"

(기사발신지=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2023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배상금 공탁 신청과 관련해 피공탁자(유족) 측의 반대를 이유로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법원 공탁관의 결정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X
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민사2부(이형석 부장판사)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제기한 '공탁관의 처분에 대한 이의 신청'에서 이같이 판단하고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판결금 제3자 변제 공탁 불수리 이의 신청을 기각한 1심 결정을 취소했다.

재판부는 독일 민법과 스위스 채무법, 프랑스 민법 등을 언급하며 "많은 나라에서는 이해관계 없는 제3자의 변제를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민법 제469조 제1항의 '당사자의 의사표시'를 두고 제1심 결정과 같이 제3자가 대신 이행할 수 없는 일신전속적 급부가 아님에도 채권자 일방이 거절하는 경우 제3자의 변제가 금지된다고 보는 것은 비교법적으로 볼 때 이례적으로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한 입장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채권자인 피공탁자(유족)만 신청인의 변제에 반대의 의사를 표시하였을 뿐이고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제3자의 변제를 제한하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제3자인 신청인은 채무자를 위해 채권자의 반대 의사에도 불구하고 위 판결금 채무를 변제할 수 있으므로 채권자가 수령 거절의 의사를 표시한 이상 변제 공탁 역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재단은 2023년 7월 4일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 거부 입장을 밝힌 피해자 고(故) 정창희 할아버지, 고(故) 박해옥 할머니 유족의 주소지 관할 법원인 수원지법에 징용 배상금 공탁을 신청했다.

그러나 수원지법은 같은 달 5일 "제3자 변제에 대한 피공탁자의 명백한 반대의 의사표시가 확인되므로 이 사건 공탁 신청은 민법 제469조 제1항에 따른 제3자 변제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며 공탁 신청을 불수리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즉각 이의신청을 제기했으나 수원지법 민사44부는 "이 사건 판결금채권과 같은 법정채권에도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가 적용돼 당사자 일방 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며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X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탁은 일정한 법률적 효과를 얻기 위해 법원에 금전 등을 맡기는 제도다.

정부는 2023년 3월 일본 기업이 내야 할 배상금을 재단이 모금한 돈으로 대신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식을 발표했고,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15명 중 11명이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당시 양금덕 할머니·이춘식 할아버지 등 생존 피해자 2명과 정창희 할아버지·박해옥 할머니 2명의 유족 등 원고 4명이 끝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들의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개시했다.

당시 수원지법을 비롯해 수원지법 안산지원과 평택지원, 전주지법, 광주지법 등도 공탁 신청서를 잇달아 받아들이지 않았다.

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