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역의 창시자 일부 김항 선생(1826-1898) 영정

『천부경』은 환국 시대로부터 전해진, 숫자를 포함해 81자의 짧은 글로 성립된 인류 최초의 경전이다. 『천부경』은 한민족의 뿌리 경전으로서 인류의 원형 정신을 함축한 유불선의 근거이며, 동서양의 철학과 수학의 근원이 되는 문명의 배꼽에 해당하는 숭고한 문서이다. 한마디로 『천부경』은 하늘의 의지를 읽어낸 우주 창조의 진화 원리를 밝힌 진경眞經이다.

김일부金一夫(1826-1898, 이름은 항恒이고 호가 일부一夫)의 정역사상은 19세기 조선 땅에서 나온 역학이다. 김일부는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를 극복한 정역팔괘도를 선포하여 새로운 시공간의 질서가 도래할 것을 예고했다. 한국인의 핏줄로 태어난 김일부는 『천부경』에 등장하는 1․3과 6, 그리고 9와 81수를 바탕으로 만물의 진화 과정과 선후천 전환의 이치를 밝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본 편집위원은 “천부경과 정역사상”을 몇 회에 걸쳐 연구, 발표한다....

1. 들어가는 말

*신문편집 사정상 각주는 생략하였음을 밝힌다. _편집자 주

『천부경天符經』이란 무엇인가? 『환단고기桓檀古記』에 의하면, 『천부경』은 옛 환국 시절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았던 한민족의 고유한 경전이다. 『천부경』의 천天은 하늘을 뜻한다. 부符는 ‘신표信表’, ‘부신符信’, ‘부합하다’, ‘일치하다’라는 뜻이다. 경經은 경서經書의 준말이다.

이때 ‘부符’를 어떻게 새기는가에 따라 『천부경』은 하늘의 궁극적 원리에 부합하는 경전 또는 하늘의 의지意志(Will)나 계시啓示(revelation)를 품고 있는 신성한 문서를 뜻한다. 이런 의미에서 『천부경』은 하늘이 보증하는 인감도장印鑑圖章이며, 『천부경』에 아로박힌 수학 법칙은 우주의 구성 질서와 변화 원리 및 천지인의 본질과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하늘의 명령을 새겼다는 의미의 『천부경』은 숫자와 문자를 포함해 81자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학자 주위에리[朱越劉]는 각종 문헌에 나타난 ‘천부天符’의 용례를 조사하고 검토하여 ‘군주의 천명’, ‘부명符命’, ‘하느님의 징조’, ‘하늘의 의지[天意]’, ‘하늘이 내려준 선물[天賜]’ 등 10가지의 다양한 뜻으로 풀이했다.

『천부경』은 가로 아홉 글자, 세로 아홉 글자로 이루어진 정방형의 형식을 띠고 있다. 81자로 구성된 『천부경』은 31자가 수數로 씌여 있다. 31자의 수를 통해 우주의 생성 과정과 상호 관계를 밝힌 『천부경』은 우주의 수학 원전, 우주 창조 수학의 원형 틀이자 하느님이 내려 주신 인류 최초의 계시록의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천부경』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만큼 다양한 것이 없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환단고기』의 위작 여부를 둘러싼 숱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천부경』을 『주역』의 음양오행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까닭에 한민족 고유의 수학과 『주역』에 투영된 수리철학을 혼동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문제는 진본이 새롭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쉽게 풀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후자는 비록 똑같은 숫자를 사용했을지라도 수의 구조와 질서를 중시했는가, 아니면 변화의 작용을 중시했는가에 따라 범주 착오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천부경』은 본체의 영역과 작용의 영역을 모두 겸비했기 때문에 수학 원전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따라서 『천부경』이 자연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한 『주역』의 수리 체계와 동일한 범주라고 착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부경』 자체에 내재된 수리 철학을 분석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며, 또한 이러한 작업을 통해 한국학이 중국학의 그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천부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근대의 여명기에 한국과 중국에서 활약한 철학자 전병훈全秉薰(1857-1927)이 『천부경』을 철학사상서로 해석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는 『천부경』을 자신의 철학을 대표하는 글로 삼아 1920년에 발간된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의 첫머리에 실은 바 있다.

『천부경』은 1부터 10까지의 수 중심으로 이루어진 상수학象數學의 모범이다. 그것은 『천부경』 전체 글자 수 81 자체가 우주의 구성을 얘기하는 수리철학을 함축하고 있는데, 81은 낙서洛書의 극한을 뜻하는 9의 제곱수(9×9)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논의하려는 정역사상은 『주역』보다는 오히려 『천부경』의 수리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그러니까 정역사상은 『주역』에 대한 독립인 동시에 한국철학의 철저한 계승이라고 할 수 있다. 『천부경』과 『정역』의 공통점은 어디에 있는가? 『천부경』과 『정역』의 연결 고리는 하도낙서에 있다. 『천부경』은 직접 하도낙서河圖洛書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천부경』 81수를 분해하면 9수 낙서가 있고, 9수 낙서를 확대하면 81수가 성립한다. ‘일적십거一積十鉅’에서 낙서 9수의 배후에 존재하는 10수 하도가 서로 겉과 속의 관계로 존재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자가 만물의 공간적 변화와 관련이 깊다면, 후자가 시간의 속살과 구조에 비중을 둔 점이 다를 뿐이다. (구고九皐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