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부 100일] ③ 관세 파고 속 한미일 협력 다지기…실용외교 성적표는
일본과 셔틀외교 조기복원…한미정상회담도 우호적 분위기 속 '선방' 평가

관세협상 교착·美한국인 구금사태 등 안심 일러…한일·한중관계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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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맞잡은 손 (워싱턴=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5.8.26 xyz@yna.co.kr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발(發) '관세 전쟁'과 미중 갈등의 격화, 북러 밀착의 심화 등 전 세계적인 경제·안보 환경 격변기의 한복판에서 취임했다.

대외적인 불확실성은 증폭되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인해 정부는 마비 상태에 빠진 위기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은 요동치는 국제질서의 풍랑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나침반으로 삼은 게 바로 '국익중심 실용외교'의 원칙이었다.

진영논리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종전의 가치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철저하게 국민과 국가의 이익을 기준으로 접근하겠다는 게 그것이다.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는 한미동맹을 기본 축으로 한미일 협력 관계를 강화하되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도 적대적이지 않도록 균형 있게 관리하겠다는 전략으로 구체화했다.

한미·한미일 협력관계를 공고히 다지고 목전에 닥친 미국발 관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인수위 없이 취임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정상외교를 조기 가동했다.

취임 불과 12일 만에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 국제사회에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복귀를 선언하고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나 셔틀외교 복원에 합의했다.

그러나 중동의 정세 불안 등 돌발 변수들이 겹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회담은 거듭 미뤄졌다.

7월 들어서는 관세 협상을 마무리 짓는 일이 당면 과제로 떠오름에 따라 실무협상이 우선 이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마감 직전인 7월 31일에야 관세 협상이 타결됐고, 동시에 첫 한미정상회담 일정도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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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하는 한미 정상 (워싱턴=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5.8.26 xyz@yna.co.kr

지난달 23일 한일정상회담, 25일 한미정상회담으로 이어진 3박 6일간의 미국·일본 순방은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첫 성과를 도출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이시바 총리와는 17년 만에 정상회담 결과 공동문서인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함으로써 한일 관계 개선에 청신호를 켰다.

트럼프 대통령과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북미 대화의 재개를 제안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에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내기도 했다.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나 미국과의 관세 협상 세부 사항 등 민감한 현안은 피하고, 실용적 관점에서 미래 협력에 방점을 둔 우호적 관계 설정에 주력한 것이다.

일본 정상을 먼저 만남으로써 한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고, 이를 동력 삼아 관세·안보 협상의 뇌관이 산적한 한미회담의 변수를 낮추겠다는 전략도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발언으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칭찬 외교'로 분위기를 바꾼 이 대통령의 유연한 대응도 돋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에 위치시키고 이 대통령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임하는 등 한반도 안보 전략도 조금 더 구체적인 형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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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수회담 갖는 한일 정상 (도쿄=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한일 정상 소인수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5.8.24 [공동취재] hihong@yna.co.kr

다만 어느 때보다도 예측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치른 한미정상회담에서 '선방'을 넘어 실질적으로 국익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혹을 붙이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관세 협상의 세부 논의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에 국내 자동차산업은 예정된 15% 관세를 확정받지 못하고 25% 관세를 부과받은 채 수출하고 있다.

안보 의제와 관련한 협상의 경우 대부분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앞으로도 인도·태평양 전략의 큰 틀 속에서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압박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의 무더기 구금 사태는 이재명 정부가 처한 냉정한 외교 현실을 일깨우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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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세관단속국 구금시설 (포크스턴[미국 조지아주]=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8일(현지시간) 미국 당국의 이민단속으로 체포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직원들이 수감돼 있는 조지아주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 모습. 2025.9.8 mon@yna.co.kr

한미 경제협력의 현장조차도 미국의 국내 정치논리 앞에서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다.

일본과의 관계 역시 이시바 총리가 사임함에 따라 훈풍이 지속될 것이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차기 총리로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도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이라는 기본 틀은 견고하게 유지하면서도 냉철한 관점으로 상황을 진단하고 실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일이 실용외교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관계를 적절히 관리하는 일도 만만찮은 과제다.

최근 중국의 80주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 톈안먼 망루에 북중러 정상이 나란히 선 장면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뚜렷해짐에 따라 남북관계와는 별도로 한반도 주변 4강과의 외교가 난제로 부상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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