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불가 K-반도체 저력 입증…삼성·SK 영업익 200조 시대 성큼
글로벌 칩 전쟁 속 韓 독보적 메모리 경쟁력 재확인…공급망 재편 위기 극복

삼성전자, HBM 실책 만회 전화위복 성공…4분기 화려한 귀환 기대

SK하이닉스, 메모리 1위·영업익 10조 돌파 등 새 역사 써…골리앗 이긴 다윗

X
삼성전자·SK하이닉스 [촬영 진연수] 2025.7.31 [촬영 홍기원] 2025.7.24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올해 국내 반도체 업계는 'K-메모리'의 영향력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입증한 해였다. 지난해 실적 부진에 시달렸던 삼성전자는 하반기 들어 완벽한 회복 신호탄을 쐈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승기를 잡은 SK하이닉스는 분기마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경쟁과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격변 속에서 대체 불가한 메모리 경쟁력이 글로벌 패권 구도를 재편했다는 평가다. 내년 본격적인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시작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 영업이익의 합계가 200조원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 롤러코스터 탄 삼성전자…우려로 시작해 대반전 성공

올해 반도체 업계는 상반기와 하반기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줬다.

1분기와 2분기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발 관세 정책 영향으로 불확실성이 극대화됐고, 미중 갈등 상황이 꾸준히 이어졌다.

X

특히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올 초만 해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약 1년 만에 다시 영업적자로 돌아설 수 있을 거란 시각이 나왔다. 메모리 반도체 사업 부진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의 조단위 적자까지 겹친 탓이었다.

그러나 1분기 삼성전자 DS부문은 1조1천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선방했다. 중국 정부의 이구환신 정책과 미국의 관세 폭탄을 우려한 중국 업체들의 풀인(선구매) 수요에 시장 전망치보다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실적은 2분기에 바닥을 찍었다. 선구매 등 일시적 수요 증가 효과가 사라지며 영업이익이 4천억원으로 급락했다. 2023년 4분기(영업적자 2조2천억원) 이후 최악의 실적이었다.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미중 갈등이 반복되며 하반기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도 지속됐다. 앞서 트럼프는 반도체에 별도의 품목 관세를 매기겠다고 예고해 업계를 긴장시켰다.

X
엔비디아와 삼성전자의 포옹 (워싱턴=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리셉션에 참석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포옹하고 있다. 2025.8.26 hihong@yna.co.kr

그러나 분위기는 7∼8월 들어 급변했다. HBM 등 고성능 메모리로 제조사들의 캐파(생산능력)가 집중되면서 범용 D램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범용 D램 매출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는 수혜를 톡톡히 봤다.

HBM 사업의 회복 시그널도 시작됐다. 3분기 들어 다수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HBM 공급을 늘리며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엔비디아의 라이벌 격인 AMD와 주문형 반도체(ASIC) 업체인 브로드컴 등으로 공급망을 다변화한 효과가 나타났다.

수조원대 영업 적자를 내던 파운드리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성숙 공정 수주 확대로 가동률 회복이 시작된 데 이어 테슬라와 애플 등 '큰손' 빅테크들과 잇따라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7월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3조원) 규모의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8월에는 애플에 차세대 이미지센서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시스템LSI사업부도 자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엑시노스를 갤럭시Z플립7에 탑재시키며 부활을 알렸다. 차세대 제품인 엑시노스 2600은 내년 출시될 갤럭시S26 시리즈에 탑재될 예정이다.

그 결과 삼성전자 반도체는 3분기 매출 33조1천억원, 영업이익 7조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에 잠시 내어줬던 메모리 1위 왕좌도 탈환했고, D램 시장에서도 격차를 크게 줄이며 자존심을 회복했다.

X
삼성-오픈AI,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 협력 체결 (서울=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이 1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상호 협력 LOI(의향서) 체결식'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 악수하며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10.1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메모리 반도체 훈풍에 대한 기대감은 샘 올트먼의 방한으로 더욱 고조됐다.

올해 10월 초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을 찾아 삼성·SK그룹과 글로벌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내용의 의향서(LOI)를 체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픈AI가 이끄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서 고성능·저전력 메모리 공급을 맡게 됐다.

삼성전자의 숙원이던 엔비디아에 대한 HBM 대량 공급도 조만간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10월 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한국을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깐부회동'을 통해 두터운 친분을 드러냈다. 황 CEO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HBM 파트너라고 언급하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삼성전자는 내년 상반기 HBM4 양산을 시작할 전망이다.

X
무대 오른 젠슨 황-이재용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5.10.30 [공동취재] cityboy@yna.co.kr

증권가에서는 HBM 사업 회복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시스템반도체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삼성전자 DS부문이 올해 4분기 15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최고조에 달하고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한국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메모리라는 하나의 큰 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대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메모리라는 카드가 다양한 레버리지(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었다"며 "한국 메모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한 해"라고 봤다.

X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대체 불가 'K-HBM' 증명한 SK하이닉스…골리앗 꺾은 다윗

SK하이닉스는 올해는 수많은 역사를 썼다.

33년 만에 삼성전자로부터 D램 시장 1위(1·2·3분기)뿐 아니라 메모리 시장 1위(2분기)까지 빼앗았다. 기업 규모를 고려하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셈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발 관세 리스크와 불확실성이 심화하던 상반기에도 견조한 실적을 이어갔다. 1분기 7조4천400억원, 2분기 9조2천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전사 영업이익(1분기 6조6천900억원·2분기 4조6천800억원)도 뛰어넘었다.

X

3분기에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했다. 매출 역시 24조4천5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HBM 시장에서 대체 불가한 입지를 확보한 덕분이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HBM 시장에서 58%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HBM은 범용 메모리와 달리 고객사와 먼저 계약한 후 생산하는 수주 형태다.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올해 HBM 물량을 완판하며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마련했다.

SK하이닉스는 HBM 개발 단계부터 엔비디아와 공고한 파트너십을 유지해왔다.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탑재되는 HBM3E를 사실상 독점 공급했고, 연내 HBM4 양산을 시작해 내년 엔비디아에 공급할 계획이다.

X
환담 후 취재진 질문 답하는 최태원 회장-젠슨 황 최고경영자 (경주=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31일 경북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 참석해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만나 환담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10.31 [공동취재] saba@yna.co.kr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뿐 아니라 ASIC 업체로 고객사를 다변화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구글의 최신 TPU 7세대(P·코드명 아이언우드)에 HBM3E 8단을 우선 공급사로 납품하고 있으며, 다음 세대(TPU 7e)에 들어가는 HBM3E 12단도 독점 공급할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는 4분기에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전망이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1개월 내 보고서를 낸 증권사 8곳의 컨센서스(실적 전망치)를 집계한 결과, SK하이닉스의 4분기 영업이익은 15조6천71억원으로 전망된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도래에 힘입어 내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실적은 최고치를 찍을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삼성전자 전사 연간 영업이익이 약 88조5천억원, SK하이닉스는 8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외국 증권사의 컨센서스는 이보다 더 높다.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을 116조4천480억원으로 전망했다. 이 중 DS부문 영업이익은 94조6천250억원으로 예상됐다.

노무라증권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99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양사 연간 영업이익이 합이 200조원을 넘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화두가 그래픽처리장치(GPU)나 AI칩에서 메모리로 옮겨오는 모양새"라며 "내년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도래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K-메모리' 파워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akmj@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