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세종시장
[최민호의 월요이야기 제109호(2025.8.18.)]
세종보는 선진도시의 품격
“산업은 전력량만큼 발전하고, 도시는 수량(水量)만큼 성장한다”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논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과학으로도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물질을 만들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대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산소를 만드는 나무도, 어떤 식물도 만들지 못합니다.
물도 만들지 못합니다.
생각해보면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합니다.
하물며 생명을 만들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기는 만들기는 하지만 전기 자체를 저장하는 기술이 없습니다. 배터리는 전기를 화학에너지로 변환하였다가 전기로 다시 변환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현대 산업은 전기가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지역의 산업은 발전량에 정확하게 비례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생명의 삶과 성장에 물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
인간의 세계 4대 문명이 다 큰 강에서 발생한 것이니, 세계의 대도시가 예외 없이 큰 강을 끼고 있는 것은 당연하고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여, 보유하고 있는 수량(水量)으로 그 도시의 사이즈가 정확히 결정됩니다.
백제 문화의 원류는 금강입니다.
금강에 댐을 만든 것은 보다 많은 수량을 상시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금강의 상류에 용담댐과 대청댐이 있어 전북과 충청권에 생활용수와 농업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대전, 청주, 전주 등 대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행정수도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곳에 '세종보(世宗洑)'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보’는 댐이라기보다는 작은 물그릇에 불과합니다.
'세종보'는 행정수도를 구상하며 대청댐으로 유량이 현저하게 줄어든 세종시의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2006년 세종시를 설계할 때 이미 계획된 것입니다.
한강이 관통하는 서울은 한강 상류에 소양강댐, 팔당댐 등이 건설되면서, 1980년 이전에는 지금의 세종시와 비슷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갈수기에는 한강물이 말라 군데군데 바닥이 드러나기 일쑤였고, 홍수 때는 대규모로 침수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강바닥을 준설한 후 수중보인 신곡보와 잠실보를 만들어 물난리를 줄였으며, 1000만 시민이 소위 ‘한강뷰’를 즐길 수 있는 선진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세종보'는 바로 이런 한강 수중보를 참고하여 구상하고 건설한 최신식 ‘보’입니다.
금강에 일정한 수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의 높낮이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명품보입니다.
선진도시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런‘보’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대영제국 런던을 상징하는 것은 런던탑과 함께 도심을 가로지르는 템즈강입니다.
이 템즈강에는 수질개선과 도시 경관을 위한 45개의 ‘보’가 있습니다.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프랑스 역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릅니다.
이 세느강에도 34개의 ‘보’가 있어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습니다.
독일의 라인강에는 86개, 미국 미시시피강에도 43개의 ‘보’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뉴욕을 끼고 흐르는 허드슨강이나 워싱턴 DC를 흐르는 포토맥강에도 역시 ‘도시 경관용 보’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 '세종보'는 지어놓고도 지금 제구실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세종보'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의 일환이라며 ‘4대강 재자연화’를 이유로 2021년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의 죽산보는 해체하고 금강의 백제보와 영산강의 승천보는 상시 개방하겠다고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정부는 2023년 감사 결과에 따라 '보'의 해체와 개방 취소 결정을 내려 4대강을 원상태로 되돌렸습니다.
그런데 신정부에서 다시 '4대강 재자연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종보'는 4대강 사업과는 무관하게 행복도시의 품격을 위해 노무현 정부 때 계획된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환경단체가 무단으로 세종보 인근 상류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면서 ‘보’의 정상 가동을 막고 있습니다.
이들은 ‘보’ 해체를 주장하지만, 이는 ‘문명강(Cutural River)’과 ‘자연강(Natural River)’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문명강’은 도시를 건설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인간이 활용하는 강을 말합니다.
‘자연강’이란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오지나 정글 속을 흐르는 생태적 강을 말합니다.
'문명강'은 인간이 이용하는 강이기 때문에 생활·산업·농업 용수를 강에서 끌어와 쓰고 이를 다시 강으로 내보내는 과정에서 수질개선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댐’과 ‘보’를 만드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박석순 전 국립환경과학원 원장은 “가뭄과 홍수를 막고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강바닥을 준설하고 ‘보’를 만들어 물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 ‘문명강’의 필수 요건”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세계의 주요 강 가운데 아마존강과 콩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강이 ‘문명강’입니다.
나일강도 그렇고 양자강도 상류에 댐을 만들어 홍수조절에 이용합니다.
우리의 금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강 상류에는 댐이 있고 용수를 담아 생활용수를 공급할 뿐 아니라 홍수조절과 전력 생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미 '문명강'으로 이용되고 있는 금강을 '자연강'으로 상상하며 태고적의 자연 상태를 원한다면 강의 상류에 위치한 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두 해체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연강’으로의 재자연화가 가능할까요?
상류의 물은 가두어 두고 중간에 유입된 물만 흐르게 한다면 과연 강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강이라기보다 개천이 흐르는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수변 경관을 즐기는 선진도시의 모습은 언감생심(焉敢生心), 바랄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Water-stressed country)'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우량은 약 1,277mm로 세계평균 880mm 보다는 많지만, 강수량이 여름철에 집중되어 그냥 흘려보내는 물이 많아 인구 1인당 가용 수자원량은 세계평균의 8분의1 수준(2018년 기준 유엔 식량농업기구 보고서에서는 스트레스 지수 85.52%로 심한 편임)으로 '물 스트레스 국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1인당 연간 가용담수량은 1,450톤으로 국제기준인 1,700톤 보다 낮습니다.
우리는 상수도 보급률이 99%로 물 부족을 체감하지 못할 뿐, 기후변화에 따라 가뭄이 어떤 형태로 들이닥칠지 예측이 안 되는 위험한 상황에서 물을 아껴 담아두지 않으면 ‘당연히 있는 것이 아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자원’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대한 국제적 평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지구는 기후변화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더더욱 실감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입니다.
가뭄과 홍수를 막고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서는 ‘문명강’의 필수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바로 ‘댐’과 ‘보’입니다.
물을 소중히 여기고 한 방울의 물도 아끼고 저장해 두어야 합니다.
누가 장담하며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가뭄이 갑자기 들이닥치지 않는다는 것을...
과거의 통계나 경험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세월이 갈수록 점점 더 피부로 느끼며, 기후변화라는 자연의 놀라운 섭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그만큼 막대한 예산을 들여 애써 만든 '세종보'를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물은 생명이며 인간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신의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후변화의 공포 속에서 언젠가 우리는 금강이 늘 일정한 수위로 쉼 없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며 '세종보'를 향해 경의를 표하고, 선배들의 선견지명에 감사해야 할지 모릅니다.
건설 당시에는 그토록 반대하며 저지했던 경부 고속도로를 달리며 우리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제2차 세계대전 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끈 경제학자이자 독일 총리였던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는, 나치 시절에 시작되었으나 독일 경제재건의 초석이 되었던 고속도로(아우토반)에 들어설 때마다 감사의 경례를 했다고 합니다.
도시 경관과 성장을 위한 '세종보'가 가동되어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금강(錦江:비단강)이 비단처럼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