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미 구심점·권력건재' 안팎 과시…'中이 주도' 자신감
북러 거느리고 美겨냥…G2 넘어 '국제질서 대안' 자처

주석급 원로 없이 등장·연쇄 회담 소화 등 존재감 부각

전문가 "시 주석, 군 확고히 통제…정치적 장수 안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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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열병식 시진핑 연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진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4일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열병식서 연설하고 있다. 202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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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발신지=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3기 최대 정치 이벤트인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열병식과 그를 전후로 한 연쇄 정상회담은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과 시 주석 체제의 건재함을 안팎에 알린 무대로 평가된다.

시 주석은 전세계가 주시하는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북중러 삼각연대의 중심이자 비(非)서방 개발도상국의 리더임을 세계에 각인시키며 '관세폭탄'으로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미국 대신 중국이 미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했다.

또 대내적으로는 국내 경제침체 속에 나온 권력 누수설·건강 이상설 등을 불식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일 베이징에서 열린 '승전 80주년' 열병식에서 시 주석이 좌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고 나란히 톈안먼 망루(성루) 중심에 선 장면은 미국과 맞먹는 G2(주요 2개국)로 성장한 중국의 정치적·외교적 위상과 자신감을 한눈에 보여줬다.

북중러 정상이 한자리에 회동한 것은 탈냉전 이후 처음으로, 옛 소련시절까지 포함하면 1959년 김일성·마오쩌둥·흐루쇼프 회동 이후 66년 만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당시 중국은 '죽의 장막' 안에 고립돼있었고 중소관계가 이념논쟁 등으로 균열을 보이던 가운데 공산 진영의 맹주는 소련으로 여겨지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와 4년째 전쟁 중인 러시아나, 핵 능력을 끌어올린 북한 모두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은 열병식에서 '左정은·右푸틴' 구도를 통해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빚어진 신냉전 구도 속에 중국이 반미 연대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서방 통제를 벗어난 북한과 러시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 주석은 또한 이번 행사에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등 26개국 60여명의 정상급 지도자를 외빈으로 초청했고, 이들과 열병식 전후로 연쇄 양자회담을 하며 우호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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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푸틴, 시진핑, 김정은 (베이징 교도=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기념 대규모 열병식에 참석했다. 2025.9.3 chungwon@yna.co.kr

이를 통해 '북중러'를 넘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을 통칭)의 리더임을 세계에 인식시켰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서방 민주국가의 고위 대표들의 불참이 눈에 띄지만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 정상들이 대거 열병식에 참석했다는 점은 중국이 지역 파트너십 강화에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보여줬다"고 짚었다.

시 주석은 이처럼 자국을 구심점으로 한 초대형 외교 이벤트인 열병식에서 미국을 겨냥해 '평화와 전쟁, 대화와 대결'의 이분법 구도를 강조하고, '평화와 정의'를 수호하는 중국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또 최첨단 무기를 대거 공개하며 중국군이 "세계적 군대로의 발전을 가속화해 국가 주권과 통일, 영토 보전을 결연히 수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0년 전인 2015년 9월 3일 열린 '승전 70주년' 열병식에서는 병력 30만명을 감축하겠다면서 "중국은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확장을 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고 밝힌 것과 대조적이다.

시 주석은 이를 통해 중국이 미국 주도 기존 국제질서의 대안이며 향후 군사적 대립에도 싸워 이길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고 외신과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세르게이 라첸코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대학원 교수는 3일(현지시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 기고에서 "시진핑은 군사력을 과시함으로써 국제적으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중국 시도가 굳건한 토대 위에 있음을 상기시켰다"며 "이번 열병식은 누군가는 패배할 가능성과 그 패배자가 중국이 아닐 것임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방송은 자사 기자들 논평을 통해 이번 열병식을 통해 "미국이 국제 규범과 제도에서 물러난 뒤 생긴 공백을 중국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메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방을 전율케 할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경제적 민족주의와 파괴적인 외교가 중국에 엄청난 외교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시진핑은 정상회담과 열병식을 통해 그 기회를 두 팔을 벌려 기꺼이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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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전 80주년' 열병식서 군 사열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시진핑 주석은 이번 열병식을 통해 내부적으로도 '1인 통치 체제'가 굳건함을 내보이며 일각에서 제기된 권력누수·건강이상설을 사실상 불식시켰다.

이번 열병식은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군부 내 부패사정 '칼바람'의 여파가 이어지는 가운데 치러져 참석자 면면을 통해 군부를 비롯한 최고위 지도부 내 권력 동향을 짚어볼 기회로 관심을 모았다.

특히 웨이펑허·리상푸 전 국방부장(장관)을 비롯해 최근 낙마가 확정된 중국군 서열 5위 먀오화, 지난 3월 이후 공식 석상에서 실종된 군 서열 3위 허웨이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등 작년 이후 실각했거나 숙청설이 도는 인물들이 시 주석의 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반중매체 등 일각에서는 시 주석을 정점으로 한 권력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시 주석은 지난주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와 지난 3일 열병식, 4일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등과의 연쇄 양자 정상회담 등 광폭 행보는 군사·외교·권력구조 전반에서 시 주석의 지배력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2015년과 2019년 열병식과 달리 전직 국가주석이 불참하고 그 자리를 김정은 위원장이 채운 것도 권력이상설보다는 시 주석의 존재감을 부각한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싱가포르 라자라트남 국제관계대학원의 양쯔 연구원은 대만 중앙통신사(CNA)에 "이번 열병식이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는 시 주석이 인민해방군(중국군)을 확고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군의 지원으로 시 주석의 정치적 장수(longevity)는 안정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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