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민족의 억압 벗어난 죽음의 해피엔딩…오페라 '아이다'
서울시오페라단 창단 40주년 기념공연…무대 빛낸 이중창들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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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오늘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오히려 무대가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비판받는 오페라 작품이 됐다. 코끼리와 말들이 등장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장면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오리엔탈리즘 연구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문화와 제국주의'라는 틀로 '아이다'를 분석한 이후, 유럽 연출가들 대부분은 고대이집트의 상징과 형태, 색채를 '아이다' 무대에서 지워버렸다. 대신 고대 이집트에 현대 미국의 패권주의를 연결한 2009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연출, 현대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국가와 종교의 힘에 파괴되는 개인을 그린 2022년 로열오페라의 연출 등이 대세가 됐다.
유명한 '개선 행진' 장면 역시 강대국 우월주의의 상징으로 폄하돼 그 황금빛 광채를 잃었고, 잿빛 콘크리트 배경에 현대식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아이다' 무대를 채웠다. 그런 세계적 트렌드 속에서 지난 13일 저녁 서울시오페라단 창단 40주년 기념 오페라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 '아이다'는 전통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 모처럼 신선한 기쁨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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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공연의 강점은 무대의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뤄내며 특별히 음악이 잘 들리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연출가 이회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넓은 무대를 꽉 채운 연출과 함께 장면과 무대를 끊임없이 변환시키며 극의 긴장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4막에서 사제장 람피스가 라다메스에게 반역죄를 물을 때 양쪽 돌벽의 벽감에 암네리스와 람피스를 나란히 세운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거대한 두 석상 사이에 계단을 내 람피스를 등장시킨 무대디자이너 김현정의 무대는 압도적이면서도 효율적이었다.
마선영의 조명과 장수호의 영상은 매 순간 적절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장면 하나하나의 의미를 강조했다. 3막에서 아모나스로가 피 흘리는 동족의 비참함을 역설할 때 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피의 프로젝션이 그 예다. 의상디자이너 조문수의 정교한 의상은 화려하게 빛나면서도 과하지 않고 조화로운 색감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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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섬세하고 빈틈없는 김봉미의 지휘로 베르디의 원숙한 음악적 경지를 탁월하게 재현하며 강렬한 대비와 역동성을 구사했다. 무대 위의 성악가들과 공연 내내 함께 노래하며 호흡한 김봉미는 남녀주인공이 함께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가는 4막 피날레에서 행복하고 황홀한 표정으로 무대에 쏟아지는 빛 속 해피엔딩을 마무리했다. 국가와 민족의 억압을 벗어나 죽음으로 사랑을 완성한 주인공들에게 베르디가 부여한 환희의 음악이 관객들에게도 생생하게 전달된 순간이었다.
'정결한 아이다'와 '이기고 돌아오라니!' 등의 유명 아리아들이 있지만 '아이다'에서 극의 밀도를 높이는 드라마틱한 장면의 핵심은 주로 주인공들의 이중창 대결이다. 2막에서 아이다와 암네리스, 3막에서 아이다와 아버지 아모나스로, 그에 이어지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대결과 화해, 그리고 4막에서 암네리스와 라다메스가 대결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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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이다 역으로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소프라노 임세경은 감정의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호소력 있는 음색으로 분노와 설움을 표현해 감동을 안겼다. 라다메스 역의 테너 신상근 역시 이중창에서 더욱 완벽한 기량과 표현력을 보여주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목숨과 명예를 포기하는 배역의 진정성이 그의 음색에 절절하게 묻어나왔다.
모든 것을 소유했지만 사랑을 얻지 못한 암네리스 역의 메조소프라노 양송미는 풍성한 저음과 애절한 가창으로 관객의 연민과 공감을 끌어냈다. 아모나스로 역의 바리톤 유동직은 패장의 절망과 분노를 토로하면서도 음악적으로 기품과 절제를 잃지 않고 노회한 설득력을 표현했다.
람피스 역의 베이스 최웅조는 첫 등장부터 견고하고 안정된 가창으로 극의 무게중심을 잡았고, 이집트 왕 역의 베이스 이준석, 무녀장 역의 메조소프라노 민주희, 전령 역의 테너 김은국 등 조역들도 탄탄한 가창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서울시합창단과 위너오페라합창단의 절도와 긴장과 다이내믹이 살아있는 가창, 김성훈의 의미 있는 안무도 공연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공연은 두 캐스트로 1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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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rosina0314@naver.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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