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들] 실패한 권력자들의 남탓 역사…윤석열은 다를까?
尹 책임 회피 일관, 심복에게 "뭘 모르는 X" 비하
12·12, 박종철 고문 책임자 발뺌하다 결국 남탓
尹에 나르시시스트 평가도…"이제라도 내 탓을"
X
(기사발신지=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리더십이 무너질 때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것은 권력자들의 습성이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그 '남'은 대개 지도자의 명령을 묵묵히 따랐던 아랫사람들이었다. 12·3 계엄 재판 양상도 그렇게 흘러간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완전히 뭘 모르는 애", "수사의 'ㅅ' 자도 모르는 놈"이라 비하하며 '손볼 대상'에 대한 불법 위치추적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뭘 모르는 애' 목록에는 심복인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포함됐다. 김 전 장관이 언론사에 병력 투입을 제안했으나, 윤 전 대통령 자신은 "거기는 민간기관"이라며 상식을 강조해 말렸다는 것이다.
실패한 지휘관들이 부하 탓을 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신군부 핵심들은 후일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자 그날의 비극이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때도 경찰 지휘부는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박 군의 건강 탓을 하더니, 진실이 밝혀지자마자 모든 책임을 수사관들에게 전가했다.
X
박종철 고문치사 경찰은 누굴까? 박종철군 고문치사 혐의를 받는 조한경 경위와 강진규 경사 호송 차량에 탄 경찰관들이 얼굴 노출을 피하려 똑같은 복장을 한 모습.1987.1.20 (서울=연합뉴스)
조선시대에서도 부하가 왕을 믿고 따르다가 역도로 몰리는 일은 흔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평안도로 도피하고 명나라까지 넘어가려 했던 선조는 이순신이 해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자 그를 시기해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다. 조선의 군왕들 상당수는 실수로 일을 그르치면 겉으로는 "모든 과오는 짐의 탓"이라고 자책하면서, 뒤로는 온갖 구실을 붙여 신하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애꿎은 부하가 희생되는 패턴은 서양에서도 다르지 않다. 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 사건 때 수뇌부와 하급 장교들은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지휘부는 "내가 내린 명령이 아니다"라며 발을 빼고, 부하들은 "상부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서 진짜 명령의 주체를 가려내기 어려웠다.
칠레의 피노체트, 아르헨티나의 비델라 같은 남미의 군부 독재자들도 재임 중 벌어진 인권 유린에 대해 자신이 지시한 적 없다며 부하들의 '과잉 충성' 탓으로 돌렸다.
권력자들의 이러한 행태를 심리학에선 '자기보존 투사(Self-preservation Projection)'라고 한다. 자신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류의 원인을 외부, 그중에서도 힘없는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는 심리다.
X
"저를 믿어달라" 어퍼컷 날렸던 윤석열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피날레 유세를 하며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2022.3.8 [국회사진기자단] uwg806@yna.co.kr
우리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천근만근의 무게를 가진다. 설사 농담 섞인 발언이라 해도 국군통수권자의 말이라면 전군이 움직이고 역사도 바뀐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은 일이 잘못되자 "내 뜻은 그게 아니었다"며 부하들의 무지 탓으로 돌리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 자신이 가장 잘 났고 ▲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나르시시스트라는 낙인을 윤 전 대통령에게 찍긴 아직 이르다. 무엇보다 재판이 끝나지 않아서다.
그래서 이제라도 "모든 것은 내 탓이니 부하들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골 검사' 출신 윤석열의 말을 믿고 표를 던진 국민에게 최소한의 위로가 되지 않겠나.
jah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