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로' 스님의 당부…"서로 부족한 상태서 짝 찾아야"
수필집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출간 간담회
"사랑에도 때가 있다…반려자 찾을 땐 욕심 줄여야"
X
수필집 낸 묘장스님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 일하며 '나는 절로'를 총괄하다 최근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김 묘장스님이 1일 오후 서울 경복궁 인근에서 수필집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불광출판사)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기사발신지=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나도 좀 부족하고 상대방도 좀 부족한 상태에서 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완벽해지려다가 결혼이 점점 미뤄져요. 혹은 내 모습은 안 보고 완벽한 상대를 찾아 떠다니다 보면 세월이 한없이 흘러요."
묘장스님은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로 2년가량 재직하며 미혼 남녀를 짝지어주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나는 절로'를 총괄했다. 그는 1일 반려자를 만나지 못한 이들을 향해 "세상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사랑에도 진짜 때가 있다"고 조언했다.
'나는 절로'의 경험을 토대로 사랑과 인연에 관해 통찰한 수필집 '인연 아닌 사람은 있어도 인연 없는 사람은 없다'(불광출판사)를 출간한 묘장스님은 이날 서울 종로구 한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열고 반려자를 찾을 때도 욕심을 줄일 줄 알아야 한다는 지론을 펼쳤다.
X
꽃길 데이트…산책하는 남녀 템플스테이 참가자 (인천=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024년 4월 6일 인천 강화군 소재 전등사에서 열린 미혼 남녀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남녀 참가자 한 쌍이 산책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는 남녀가 잘 맺어지는 것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 이는 눈높이와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일 잘 되는 케이스는 20대 후반∼30대 초반입니다. 이들은 커리어가 조금 부족해요. 상대방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죠. 그러니까 '아, 우리 나머지 빈 곳은 함께 살아가면서 채우자'라는 마음이 자리를 잡는 것 같아요. 그 덕분인지 상대의 부족한 점도 수용하고 함께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 많지요."
30대 후반을 넘어가면 직업적 성취가 쌓이는 만큼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스님은 짚었다. 그는 "급하니까 눈을 낮추고 자기 객관화도 잘 되어서 좋은 인연이 많이 만들어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잘 안되더라"고 그간 지켜본 바를 들려줬다.
'나는 절로'를 20·30대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고연령층이 소외감을 느끼고 50대 안팎에서도 기회를 달라는 요청이 있다는 얘기에 묘장스님은 "이럴 때는 팩트 폭행을 안 할 수가 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그런 분들도 연결하려고 해봤는데 눈이 굉장해요. 굉장한 사람을 원하고 그들의 부모님도 자녀와 함께 눈높이가 높아져요."
X
책 표지 이미지 [불광출판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체력적인 측면에서도 20대와 40대는 만남에 임하는 태도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20대의 경우 만남의 자리를 만들면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며 새벽 2∼3시까지 열정적으로 임했지만, 40대의 경우 저녁 파티를 주선하면 직장 회식에 참석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밤 10시만 되면 취침하려고 하는 등 만남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한다.
묘장스님은 "그분들은 조금 다른 사랑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20대와 같은 방식을 무리하게 따라 하지 말고 다양한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라고 권했다.
"전생의 친구가 금생(이번 생애)의 부부가 되기도 하고 전생의 선생님과 제자가 부부가 되기도 하죠. 또 전생의 원수가 지금 부부가 되기도 하고 여려 인연이 얽혀 있다는 말이죠. 꼭 사랑을 찾아야만 부부의 인연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절로'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를 연상시키는 재치 있는 제목과 절이라는 독특한 배경,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자만추)하는 경향에 힘입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달 예정된 신흥사 편에는 남녀 24명 모집에 2천620명이 지원해 여성의 경우 경쟁률이 128대 1에 달했다. 이는 청춘 남녀를 이어주기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인데, 과거에는 프로그램이 흥행하지 못하는 '암흑기'도 있었다고 한다.
X
어색한 자기소개…기대감 충만 (인천=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2024년 4월 6일 인천 강화군 소재 전등사에서 열린 미혼남녀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에서 여성 참가자들이 남성 참가자의 자기소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묘장스님은 "프로그램이 잘 안됐던 시기에는 (참가자를 절에 모아놓고) 한두시간씩 (사랑에 관한) 강의했다"며 "절에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 아니라며 밤 9시에 강제 취침을 시키고 새벽에 깨워 108배를 시켰다"고 실패담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그분들에게는 어떻게 보면 잔소리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런 것들을 걷어냈죠. 잘되라고 하던 얘기를 안 해줬더니 오히려 더 잘 됐어요."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 극복을 '나는 절로'의 목표로 내걸었다. 지난해 낙산사 편에 참가해서 인연이 닿은 한 커플과 백양사 편에 참가한 두 커플이 올해와 내년 사이에 결혼할 예정이다.
스님은 결혼했다가 이혼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에 관해 "사실 나는 (결혼을) 안 해봐서 그런지 헤어지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사랑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면서 책에 실은 주례사를 소개했다.
X
합장한 묘장스님 [촬영 이세원]
주례사에는 '행운'이란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의 청혼을 받아들인 한 총각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결혼을 약속하고 며칠 지나니 '불행'이라는 여인이 찾아와 또 청혼한다. 총각이 단호히 거절하자 먼저 온 행운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불행과 자매지간이라 어디든 같이 다녀야 합니다. 불행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저 또한 떠나겠습니다."
묘장스님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라지만 우리 삶에는 늘 행복과 불행이 함께 한다"며 "살다 보면 기쁘고 행복한 일만큼 어렵고 힘든 고난이 따라올 텐데, 그럴 때면 서로가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시원한 그늘이 되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묘장스님은 최근 단행된 조계종 인사에 따라 지난달 20일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