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의 월요이야기 제118호(2025.10.27.)]

- 절대적 아름다움을 향한 모험들 -

세종한글축제가 끝나고 수고한 시와 문화재단 직원들과 함께 ‘1927 아트센터’에서 즐거운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유쾌한 한마당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문화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문화, 그것은 “그들만의 고유한 무엇(something d
ifferent)”이 아닌가, 그리고 예술이란 “이중 아름다운 것(but beautiful)”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종한글축제는 ‘무엇인가 다른 것, 그렇지만 아름다운 것'(그것은 결국 창조적이라는 말이 되겠지요)들을 보여주기 위한 우리 세종시의 노력이었고, 그런 노력에 수고하신 직원들을 저는 칭찬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될까요?
단지 감정과 느낌의 문제일까요?
인간은 지금도, 아니 어쩌면 영원히, 끈질기게 절대적 아름다움을 찾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예술가들의 신앙이자 모험인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상 만물이 수(數)의 질서로 이루어졌다고 믿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수는 우주의 근본”이라 했고, 그 조화 속에서 인간은 미(美)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찾은 대표적인 아름다움의 비율이 바로 "황금비율(1:1.618)"이었습니다.
전체와 부분의 비율이 같을 때 생기는 안정감, 8등신으로 대표되는 미인의 외모, 이 비율은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미켈란젤로의 인체조각, 심지어 인간의 얼굴에서도 발견된다고 보았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를 인간의 신체 비례에 적용해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렸지요.
그들에게 아름다움은 우연이 아니라 질서와 비례의 산물이었고, 신이 만든 조화의 법칙이라 믿어졌습니다.

자연은 계산기를 쓰지 않지만, 그 질서 속에는 보이지 않는 수학의 리듬이 흐른다고 여겼습니다. 단순한 덧셈으로 이어지는 1.1.2.3.5.8.13...의 피보나치 수열이 황금비율에 수렴한다고 믿었고, 해바라기 씨앗의 배열, 조개껍질의 나선형, 은하의 소용돌이 속에도 우주의 질서와 법칙이 숨어있어 아름답다고 믿었습니다.

기원전 피타고라스 학파는 1:2, 2:3, 3:4 같은 수의 비례에 의한 음정이 가장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것이 훗날 화성학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행성의 운동까지도 음악적 비례를 따른다고 믿어 이를 “천체의 음악”이라 했습니다.

근대 이후의 수학자들은 ‘대칭’ 속에서 또 다른 미의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대칭은 변화를 허용하면서도 본질을 유지하는 질서로 여겼으며 나비의 날개, 눈송이, 이슬람의 기하학적 무늬가 아름다운 이유를 ‘대칭’에서 찾았습니다.
현대 성형외과 의사들이 미인을 창조해내는 비결이 바로 얼굴의 대칭점을 찾아 교정해 주는 것이 바로 그 원리입니다.

현대 수학자들은 “프랙털(fractal)”이라는 ‘불규칙 속의 규칙’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찾았습니다. 혼돈 속에서 자기유사성을 찾아, 예를 들어 나뭇가지의 분기 모습, 구름의 형태, 산맥의 능선 속에서 “불규칙 속의 규칙”이라는 현대적 미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폴 디랙(Paul dirac)은 말했습니다.
“진리가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은 아직 진리가 아니다”
과학의 진리는 군더더기가 없이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아름답습니다.

건축에서는 기하학으로, 음악에서는 음의 비율로, 회화에서는 원근과 구도의 계산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며 혼돈의 세계 속에서도 조화와 의미를 발견하려는 인간의 욕망, 이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험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아름다움이 반드시 대칭과 비율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비뚤어진 선에서도, 부서진 돌조각 속에서도 큰 감동을 느끼고, 파격의 통쾌한 감격, 완벽하지 않음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역시 너무나 인간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국 절대적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여정 그 자체인지 모릅니다.
수학적 질서를 세우며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조화를 향한 마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완전함을 껴안는 용기들, 이 또한 아름다움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요?
다르지만 아름다운,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을 향하여 우리는 깨어나 도전하고 창조합니다.

지금 ‘박연 문화관’에서는 취석 송하진 작가의 ‘한글 서예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기존의 서예체가 아닌 한글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그만의 파격적인 여정에 우리는 문화와 예술의 진한 아름다움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그 예술가를 응원합니다.

세종한글축제에 온 힘을 다해주신 문화예술과, 한글문화도시과, 세종문화재단 직원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Something different but beautiful.”


- 세종특별자치시장 최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