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21세기 윤봉길의 꿈…아프리카와 연대해 '세계 AI 수도' 되자
박기태 반크 단장

X
박기태 반크 단장 [박기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X
2023년 당시 윤봉길 의사 상하이의거 91주년 기념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2023년 4월 29일 서울 서초구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하이의거 91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현재 세계 지도에 한국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가 되어 전 세계인은 한국의 존재를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새겨 넣는 것은 장차 우리의 독립운동에 관해서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믿는다.' (일본 내무성 자료에 나온 윤봉길 의사의 '꿈' 부분)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지기 전, 스물다섯 청년 윤봉길 의사가 품었던 비장하면서도 당당했던 꿈이다. 당시 일제는 만주사변 승리를 자축하며 아시아 전역에 제국주의의 위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세계 지도 속 한국은 일본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존재 자체가 지워진 상황이었다. 청년 윤봉길의 거사는 '인류를 대표해 일본 제국주의를 심판하려는 한국인의 꿈'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X
윤봉길의사기념관 [충청남도 예산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약 100년 전 윤봉길의 외침: 한국, 드디어 세계에 각인 되다

의거 직후, 윤봉길의 이름은 뉴욕타임스, 데일리 미러 등 해외 언론 1면에 대서 특필됐다. 그의 거사는 단순한 군사적 타격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일본 군 최고 사령관이 사망하는 등 군 전력에 막대한 피해를 줬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한국인의 강력한 독립 의지와 일본 제국주의의 폭압성을 동시에 폭로했다. 영국의 한 언론은 이 사건을 다루면서 "일본은 한국을 식민지배하는 기간 한국을 경제적·행정적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인들은 일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보도는 국제사회에 일본이 일방적으로 퍼뜨려온 한국 지배에 대한 왜곡된 주장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그 인식을 바로 잡는 데 기여했다.

청년 윤봉길은 세계지도에 한국이 일본과는 다른 나라였음을 분명히 드러내며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짓밟혀 온 한국인의 자존감과 독립의 열망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장제스 중국 총통은 "중국의 100만 대군과 4억 중국인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극찬했다. 이 극찬은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이후 중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막대한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임시정부의 국제적 위상이 급상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에서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장제스 총통이 연합국을 설득해 '한국을 독립시킨다'는 특별 조항을 포함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 역시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서 비롯됐다고 서술했다. 한 청년의 숭고한 희생이 강대국들의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초석을 놓은 셈이다.

약 100년이 흐른 지금, 윤봉길 의사가 염원했던 '한국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강력하게 새겨 넣는 것'이라는 꿈은 완벽하게 이뤄졌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2억 한류 팬을 보유한 문화 강국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일본과 확연히 다른 색깔로, 독립적이고 역동적인 국가로 각인됐다. 세계 지도에서 한국과 일본은 명확히 구분됐다. 한국의 문화와 기술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성취는 윤봉길 의사의 정신적 유산이며, 우리가 그의 꿈을 계승했음을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성취에 만족하고 멈춰 서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총칼 대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무기로 삼는 새로운 형태의 '인공지능(AI) 신(新)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신제국주의: 디지털 영토 침탈과 역사 문화 왜곡

21세기 AI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의 인프라이자 권력 그 자체가 됐다. AI는 금융, 군사, 통신, 사회 전반을 움직이는 새로운 신경망이다. 냉전 시대 핵무기가 국력의 척도였다면, 지금은 AI 역량이 국가 안보와 미래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사이버 공격은 총과 칼 없이 한 나라의 금융 및 군사 방어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 AI 기반 가짜 정보는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극단적으로 키울 수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AI 강국인 미국과 중국이 만든 AI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그들이 학습한 데이터에 기반해 우리의 주권적 가치가 심각하게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유명 생성형 AI에 영어로 한국의 영토인 독도에 관해 물으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제분쟁지역'이라 답하고, 동해는 '일본해'라고 답한다. 심지어 세계 생성형 AI 점유율 1위인 챗GPT에 일본어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명칭)로 질문하면 "일본에 속한 섬이지만, 한국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고 답변하기까지 한다. 이는 해당 AI들이 한국 자료가 아닌, 서구권의 영어 자료를 기반으로 학습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영어 자료에는 일본이 국제사회에 오랫동안 홍보한 독도에 대한 잘못된 내용이 담겨 있다. 심지어 일본어로 답하는 자료에는 일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국의 유명 생성형 AI인 딥시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리장성의 길이를 물으면 '한반도 평양까지'라고 답변하고,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라고 답한다. 이는 중국의 AI가 철저히 중국의 자료를 학습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역사 왜곡이다. AI가 전 세계 정보의 중심이 되는 상황에서 자국의 역사, 문화, 가치관을 반영한 데이터를 갖지 못한다면 주권을 지킬 수 없는 디지털 식민지로 전락할 수 있다.

AI를 독립적으로 만들고 AI에 자국의 데이터를 반영하지 못할 경우, 강대국의 AI에 의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태계가 종속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구한말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영토, 역사, 문화 등을 빼앗긴 아픈 경험이 21세기 디지털 영역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X
이봉창(왼쪽)·윤봉길 의사 이봉창(1900∼1932) 의사와 윤봉길(1908∼1932) 의사가 한인애국단에 입단하며 찍은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소버린 AI: 21세기형 독립운동 무기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총과 함선을 이용해 식민지를 개척했듯이, 21세기 AI 신제국주의 시대에는 AI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AI 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지 않기 위해 독자적인 소버린 AI(주권 AI) 개발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소버린 AI란 국가가 자체적인 데이터와 인프라를 통해 자국 역사, 문화, 언어, 가치관 등을 반영해 개발하는 AI를 뜻한다. 혹은 외국에 대한 의존 없이 독립적으로 AI를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가 국정과제로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독자적 소버린 AI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국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2025년 9월 22일 한국 정부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의 협력은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가 될 수 있는 글로벌 자본 연계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블랙록 회장은 "AI와 탈탄소 에너지 전환은 반드시 함께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목표에만 안주해서는 안 된다. 윤봉길의 꿈을 이 시대에 완성하려면, 우리는 아시아 AI 수도를 넘어 '전 세계의 AI 수도'를 목표로 비전을 확대해야 한다.

◇21세기 윤봉길의 새로운 꿈: 아프리카를 세계에 각인시키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바로 아프리카 54개국과의 연대를 통한 AI 기술 주권 공유다. 21세기 윤봉길의 꿈은 '세계인의 머릿속에 아프리카를 강력하게 새겨 넣는 것'이 되어야 한다.

왜 아프리카인가. 100년 전 세계 지도에서 한국의 존재가 지워졌던 것처럼 오늘날 54개국 아프리카 국가들의 역사와 문화 역시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각인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풍부한 역사와 다양한 문화는 강대국의 AI 시스템 속에서 소외되거나, 과거 이들을 침략한 강대국들이 만든 영어 자료를 기반으로 왜곡돼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AI 신제국주의 시대, 소버린 AI를 가장 강력하게 필요로 하는 나라들은 바로 아프리카에 있다.

한국은 제국주의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빼앗긴 아픔을 겪었고, 이를 극복해낸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고통과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다. 식민 지배의 아픔을 극복한 한국만이 아프리카 국가들의 진정한 AI 기술 주권 확보를 도울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과 도덕적 책임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소버린 AI가 단순히 미국과 중국 중심의 패권주의적 AI에 대항하는 '방패' 역할에만 머문다면, 결국 한국 이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갈라파고스'(고립과 폐쇄) AI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막대한 노력과 자원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소버린 AI가 제국주의 시절 한국과 비슷한 아픔을 겪은 아프리카를 품을 수 있는 '포용과 연대의 비전'을 갖는다면, 한국의 AI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담은 세계 표준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손을 잡고 AI 데이터와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돕고, 이를 추진할 AI 인재 양성을 추진하자. 이를 통해 자국 역사, 문화, 언어, 가치관 등을 반영한 AI를 개발하도록 돕고 아프리카 AI 생태계를 한국이 앞장서서 구축한다면 우리는 한국이 속한 아시아를 넘어 인구 15억명의 아프리카를 지렛대 삼아 전 세계 AI 수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에 아프리카 AI 사업을 반영하고 체계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또한 '국가 AI 전략위원회' 주관으로 한-아프리카 AI 데이터 협력 포럼을 창설해 아프리카 54개국의 AI 주권에 대해 한국이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포럼에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 교육기관, AI 전문가, 청년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공공 프로젝트 연계와 국제 교류 프로그램도 마련해야 한다.

◇한-아프리카 소버린 AI 연대, 윤봉길의 꿈을 완성하다

장제스 총통이 칭송한 윤봉길 의사가 만약 오늘날 청년으로 활동한다면 그는 한류로 세계적 위상을 높인 대한민국에서 국제사회에 대한 새로운 공헌을 모색했을 것이다. 그 공헌은 바로 '한-아프리카 소버린 AI 연대'를 구축해 아프리카 국가들이 강대국의 AI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정체성과 주권을 지켜나가도록 돕는 일이 됐을 것이다. 100년 전 한국이 일본과 같은 색으로 표기돼 존재감이 없었듯이 오늘날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 역시 AI 상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청년 윤봉길이 세계인의 머릿속에 한국을 강력하게 새겨 넣기 위해 거사를 단행했듯이 이제 대한민국은 아프리카 54개국을 위한 AI 독립운동을 지원해야 한다.

한국이 아프리카 언어·역사·문화를 담은 AI를 아프리카 국가들과 함께 만들어 21세기 한국이 전 세계 AI 수도가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윤봉길의 꿈을 이 시대에 가장 웅장하게 완성하는 길이 아닐까. 이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이 세계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값지고 의미 있는 소프트파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시대적 소명을 완수하고, 21세기 윤봉길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한-아프리카 소버린 AI 연대를 통해 인류 공영에 기여하는 AI 강국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쓰자.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기태 단장

현 반크 단장,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정책실무위원, 직지 홍보대사 활동 중, 외교부·대검찰청 정책자문위원, 청와대 청년위원회 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KOICA 홍보전문위원, 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홍보대사, 서울시 홍보대사 등 역임.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